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숫자는 때로 상징이 된다. 이번 인사동 전시는 그 상징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한민국 명인 작품 K-민화·K-그라피 70여 점, 어린이 부채 93점, 나한동자 53점, 장사익 시詩 48점, 총 265점, 이 숫자는 단순한 작품 수가 아니다. 한국 문화의 층위와 결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다. 전시는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2층에서 열리며, 전통과 현대, 어른과 아이, 수행과 노래가 한 공간에 선다. 명인의 붓끝, K-민화와 K-그라피 대한민국 명인들의 70여 점 작품은 전통의 깊이를 증명한다. K-민화는 해학과 상징을 통해 한국인의 삶과 염원을 담아내고, K-그라피는 획 속에 정신을 새긴다. 글씨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문화의 선언이 되고, 그림은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얼굴이 된다. 명인의 작업은 기술을 넘어 시간의 축적이며, 한국 미감의 뿌리다. 어린이 부채 93점, 동심의 바람 아이들이 직접 쓴 시를 부채 위에 그대로 옮겼다. 꾸미지 않은 문장, 솔직한 감정, 작은 손에서 시작된 붓질, 93점의 부채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다. K문화의 가장 맑은 시작이다. “K문화는 멀리 있지 않다. 아이의 문장 한 줄에서 시작된다.” 이 말이 이번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103세의 아침은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한 사람이 붓을 든다. 1923년생 남상준 선생은 1961년 팔산 동지성 선생에게서 혁필을 사사한 뒤, 무려 60여 년 넘게 혁필가로 살아왔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혁필은 한글에 머물지 않는다. 한문을 넘고 영어까지 건너간다. 더 나아가, 대나무를 깎아 만든 죽필竹筆까지 후학들에게 전수한다. 죽필은 혁필보다도 더 희귀한 전통 기법이다. 나뭇가지를 짓이겨 만든 유필柳筆, 죽필竹筆, 갈필葛筆, 초필草筆 등은 중국 후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의 필법으로 기록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이 죽필을 실제로 다루고 가르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문화재 없는 문화재, 혁필의 아이러니 손등에는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패였지만, 붓끝은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쉬셔야지요." 그러나 그는 되묻는다. "누가 이 획을 이어 쓰겠습니까.“ 혁필은 흔히 한글에 머문다. 하지만 그의 붓은 경계를 모른다. 한글을 지나 한문으로, 다시 영어로 획은 언어를 넘어 사유가 되고, 사유는 전통이 된다. 그 곁에는 이제 이름조차 잊혀 가는 죽필이 있다.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K-민화·K-그라피 백서』를 펴내며 이름 없던 것에 이름을 주는 일은 창조가 아니라 인정입니다. 민화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까치와 호랑이가 벽에 걸려 있었고, 모란과 연꽃이 병풍을 채웠습니다. 그 안에는 웃음도 있었고 기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는 그것을 온전한 이름으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붓으로 쓰는 한 획 한 획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속에 담긴 호흡과 절제, 여백의 미학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늘 다른 언어의 옷을 빌려 입어야 했습니다. 이 백서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쓰였습니다. K-민화와 K-그라피. 이 이름들은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해 온 것을 제자리에 놓는 행위입니다. 2026년 1월 23일, 이 이름들이 처음으로 공식 기록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누군가의 권리가 아니라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 책은 선언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록합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왜 우리는 이 이름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는가"라고 물을 때, 이 책이 조용히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저자 담화총사의 한마디- 이 책은 새로운 주장을 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이미 존재해 왔던 것을, 제자리에 놓기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그리움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눈처럼, 비처럼, 말없이. 전경섭의 詩 「그리워 내리다」는 그리움을 감정의 폭발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지워지지 않기 위해 조용히 내려앉는 감정이다. 잊히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마음의 상태다. 양보경 작가의 붓은 이 시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리움이 내려오는 순간의 무게를 남긴다. 굵고 검은 획은 망설임이 없지만, 획 끝마다 남겨진 여백은 망설임 그 자체다. 이는 다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체념에 가깝고 체념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랑에 가깝다. 특히 화면 곳곳에 흩뿌려진 금빛 점들은 기억의 잔상 같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빛으로 남아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르는 그 마음... “그리워 내리다”라는 제목은 무언의 동사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지 않아도, 마음을 부르지 않아도, 그리움은 스스로 내려와 우리의 하루 위에 앉는다. 이 작품은 묻는다. 당신은 아직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작가노트 | 양보경 그리움은 내려오는 감정이다. 양보경 작가는 그리움은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내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담화미디어그룹이 지난 23일, 지식재산처에 ‘K-민화’와 ‘K-그라피(K-Graphy)’에 대한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이번 출원은 단순한 상표 보호를 넘어, 한국 미술과 붓 문화의 정체성을 ‘이름’으로 확정하는 첫 제도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K-민화’와 ‘K-그라피’는 이미 담화미디어그룹이 운영해 온 신문·미디어 제호이자 문화 담론의 언어다. 그러나 이번 출원은 언론 명칭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 그 핵심은 분명하다. “이것은 한국의 것이다.” K-민화는 왜 ‘K’여야 했는가 민화는 오랫동안 ‘동양 민속화’, ‘아시아 포크아트’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소개돼 왔다. 하지만 담화 이사장은 일찍부터 이 질문을 던져왔다. “왜 한국에서 태어난 민화가, 세계에 나가면 한국의 이름을 잃는가.” 실제로 담화는 2024년 이후 K-민화를 ‘언론 용어’로 먼저 정착시켰고, 동시에 25개국에 K-민화 작품을 기증하며, 민화의 국적이 한국임을 실천으로 증명해왔다. K-민화는 장르명이 아니다. ‘K’는 국가 코드이며, 문화의 출처 표시다. 중국 민화가 아닌 K-민화 일본 민속화가 아닌 K-민화 동양 장식화가 아닌 K-민화 이번 특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한글의 아름다움과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담은 공공서체 23종 무료 배포 서울시가 도시 고유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개발한 서울서체가 공공부문은 물론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폭넓게 활용되며 서울의 시각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의 정체성을 담은 상징 서체 2008년 7월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도시 선언과 함께 탄생한 서울서체는 강직한 선비정신과 단아한 여백의 미를 담고 있다. 조형적으로는 한옥의 열림과 기와의 곡선미를 표현했으며, '한강'과 '남산'이라는 서울의 대표 자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서울한강체와 서울남산체로 시작된 서울서체는 한글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평가받는 한글의 우수성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대한민국 수도의 이미지로 재정립함으로써 국가적인 미의식과 전통 문화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시민 일상 속 서울서체 서울서체는 도로명주소, 지하철 안내판, 버스 정류장, 사설안내 사인 등 시민들이 매일 접하는 다양한 공공 공간에 적용되어 도시의 가독성을 높이고 통일된 시각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서울 곳곳의 건축물 외관 및 공원 시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박노해의 詩 ‘청매화’는 기다림과 인내를 말하지만, 그 방식은 소리보다 먼저 도착하는 향기다. 눈길을 걸어온 청매화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시린 바람 곁에서 피어나, “내가 왔다”고 말하지 않고도 이미 도착해 있음을 알린다. 은새 인복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정서를 여백과 절제된 선으로 옮긴다. 화면 한쪽에서 비스듬히 뻗은 매화 가지는 혹독한 겨울을 견뎌온 시간의 궤적처럼 보이고, 그 끝에 맺힌 작은 꽃들은 침묵 속에서 완성된 존재의 증거다. 굵고 담담한 획은 바람을 견딘 몸의 기억을 닮았고, 여백은 눈길 위에 남은 숨결처럼 고요하다. 이 작품에서 ‘오는 것’은 발걸음이 아니라 향기다. 먼저 마음에 닿고, 나중에 형상을 남긴다. 그래서 이 K-그라피는 누군가를 부르는 작품이 아니라, 알아보는 작품이다. 향기가 날아오면, 우리는 이미 서로를 알아본다. 작가노트 | 백인복 명인 말하지 않아도, 나는 여기에 청매화는 가장 추운 계절에 피어도 자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향기로 먼저 도착합니다. 이 작업에서 저는 보여주기보다 남겨두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보는 순간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린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해인의 詩 ‘바닷가에서’는 바다를 풍경으로 삼은 시가 아니다. 이 시에서 바다는 신의 음성과 인간의 울음이 동시에 머무는 자리, 그리고 내려놓음과 끌어안음이 교차하는 영적 공간이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자연의 소음이 아니라, 통곡과 위로가 번갈아 울리는 존재의 언어다. 조미주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리듬을 수평과 깊이로 번역한다. 화면 하단에 번져가는 푸른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장을 받아내는 감정의 그릇이다. 먹으로 적힌 시어들은 파도처럼 반복되며 밀려왔다가, 어느 순간 숨을 고르듯 여백 속으로 물러난다. 이 여백은 말하지 않음의 공간이자, 기도가 멈추는 자리다. 특히 이 작품에서 글씨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파도가 모래 위에 말을 “엎질러놓듯”, 문장들은 화면 위에 흘러놓아진다. K-그라피의 획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결을 그대로 품고 있으며, 그 거침 속에서 오히려 시의 진실성이 살아난다. 밀물과 썰물처럼, 이 작품은 붙잡으라 말하는 순간과 놓아버리라 말하는 순간을 함께 품는다. 결국 조미주 작가의 K-그라피는 바다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바다 앞에 선 한 인간의 마음 상태를 그린다. 이 작품은 묻는다. 우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박노해의 詩 「길」은 위로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에 가깝다. 이 시에서 길은 이미 놓여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한 발을 내딛는 순간에 비로소 생성되는 과정이다. “길을 잃으면 길이 차차 안 온다”는 문장은 실패의 선언이 아니라, 멈춤에 대한 경고다. 걷지 않는 한, 길은 오지 않는다. 부선영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메시지를 구조와 색의 대비로 시각화한다. 작품 중앙에 노랑색으로 쓰인 ‘길’은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축이자 심장이다. 검은 먹의 문장들이 불안과 망설임의 흐름처럼 주변을 에워싸고 있을 때, 노랑의 ‘길’은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내면의 표지판처럼 선명히 서 있다. K-그라피 특유의 거침없는 필획은 망설임 없는 걸음을 닮았다. 번지거나 삐뚤어진 획조차 실패가 아니라 흔적으로 남으며, 그것이 곧 ‘걸어왔음’의 증거가 된다. 이 작품은 말한다. 길은 정답이 아니라 선택이며, 완성이 아니라 지속이라고. 결국 길은 지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의 몸 안에서 시작된다고... 작가노트 | 부선영 명인 이 작품을 쓰며 ‘길’을 목적지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길은 늘 불안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박노해의 詩 「숨비소리」는 버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들어가야 할 곳을 정확히 가리킨다. “휘, 숨소리 토하며 반드시 살아나와야 한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지침이다. 삶의 표면에서가 아니라, 인생의 심장부까지 최대한 깊이 들어가라는 요구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다시 숨을 찾아 나와야 한다는 명령이다. 백경애 작가의 K-그라피는 이 詩의 긴장을 몸의 곡선과 호흡의 흔적으로 번역한다. 작품 하단에서 상단으로 치솟는 형상은 물속으로 잠수하는 인체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시 수면을 향해 몸을 비틀어 올리는 생명의 궤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먹의 농담은 폐 깊숙이 밀려드는 물의 압력을 닮았으며, 번져가는 선들은 숨을 되찾기까지의 흔들림과 긴박한 리듬을 닮았다. 이 작품 속에서 잠수부는 단순히 가라앉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가장 깊은 곳으로 몸을 맡기며, 동시에 반드시 다시 떠오르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인간의 상징으로 서 있다. 글씨는 단정하지 않다. 호흡이 고른 순간이 아니라,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순간에 쓰였다. K-그라피는 여기서 미학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 된다. 설명을 지운 자리에는 호흡만 남고, 장식 대신 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