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완전해야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류시화의 이 문장은 위로를 넘어 존재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우리는 늘 더 나아져야만, 더 채워져야만 빛날 수 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시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달을 보라고. 늘 둥글지 않아도, 매 순간 제 몫의 빛을 내는 달을... 조희진 작가의 이 작품은 깊은 밤이다. 별처럼 흩뿌려진 여백과 푸른 어둠 위에 떠 있는 반달은 결핍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진행 중인 존재의 얼굴이다.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도 이미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달은 말없이 증명한다. 굵고 단호한 획으로 쓰인 ‘달’의 형상은 흔들림 없이 화면의 중심을 잡고, 그 주변의 잔잔한 번짐은 시간의 숨결을 남긴다. 이 작품에서 ‘너’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우리 모두다. 겉으로 보이는 너보다 더 큰 너,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미 안에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이야말로 이 시가 가리키는 빛이다. 조희진 작가는 K-그라피의 언어로 옮겨진 이 시는 읽히기보다 보이며, 이해되기보다 체감된다. 달은 설명되지 않고, 대신 바라보게 만든다. 그 바라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나는 빛나고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김용택의 詩는 늘 자연에서 시작해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다시 설레는 봄날에’, 또한 그렇다. 이 시에서 봄은 계절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이며, 설렘은 젊음이 아니라 다시 믿어보려는 용기다. 장세진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정서를 ‘길’로 번역한다. 작품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곡선의 길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수없이 포기했던 마음을 다시 건너는 내면의 동선이다. 논두렁처럼 굽이진 길, 아직 차가운 물빛을 품은 강, 그리고 끝내 피어나는 봄꽃이 모든 요소는 삶이 늘 곧게만 흐르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말한다. 먹으로 쓴 글씨는 서두르지 않는다. 획은 단정하지만 완결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시 설레는 봄날에”라는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초대다. 이미 설레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설레도 괜찮아진 마음의 상태를 조용히 내어준다. 그래서 이 작품의 봄은 소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한 번 더 삶을 믿어보기로 한 사람의 낮은 목소리에 가깝다. K-그라피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글과 그림의 역할을 나누지 않는다. 글씨는 풍경이 되고, 풍경은 시의 행간이 된다. 읽는 이는 문장을 따라가다 길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겨울이라고 아무 꽃도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라.” 정태운의 시 「그러기에」는 단호하다. 계절을 이유로, 나이를 이유로, 절망을 이유로 삶을 단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김경자 작가의 ’동백‘은 이 시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시가 말하려는 진실을 한 송이 꽃으로 증언한다. 작품 속에 동백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절제된 붉음으로 겨울의 공기를 견딘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잎은 푸르고, 꽃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 옆에 머문 작은 새 한 마리는 생의 온기를 상징한다. 떠나지 않고 머문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희망임을 말하듯... 김경자 작가의 붓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먹과 채색은 조용히 겹쳐지고, 여백은 말보다 깊다. 이 여백 속에서 동백은 외친다. “나는 피어야 할 때가 아니라, 피어야 할 이유로 핀다.” 시의 중반부, “절망이라고 삶의 의지마저 꺾지 마라 /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중심 사상이다. 동백은 희망을 ‘기다리는’ 꽃이 아니다. 희망을 직접 증명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 그림의 겨울은 차갑지만, 차갑기만 하지는 않다. 마지막 연, “신은 우리의 마지막 날을 알려주지 않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떠나는 것은 언제나 몸이지만, 남는 것은 마음이다. 오애순의 시 「두고가는 마음에게」는 이 단순한 진실을 가장 조용한 언어로 건넨다. 이윤정 작가는 그 조용함을 더 낮은 음역으로 끌어내린다. 화면의 푸른 밤은 울음을 삼킨 하늘 같고, 반달은 끝내 다 말하지 못한 마음의 표정 같다. 별점처럼 흩어진 여백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좌표다. 굵은 획으로 세운 제목의 수직은 이별의 단호함을 닮았고, 그 옆에 흐르듯 이어지는 문장은 남겨진 마음의 진동을 닮았다. “이제는 길에 없어도 당신 계신 줄 압니다.”라는 문장은 작별의 문장인 동시에 신뢰의 선언이다. 떠나보내는 법을 배웠기에, 남겨두는 법도 알게 된 마음이 작품은 그 성숙을 보여준다. 이윤정 작가의 K-그라피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먹의 농담은 절제되어 있고, 속도는 늦다. 느린 속도는 애도의 품격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위로는 즉각적이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아까운 당신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화면 아래에 내려앉을 때, 우리는 알게 된다. 이별은 패배가 아니라 감사의 형식일 수 있음을. K-그라피 칼럼 | 남겨진 마음을 쓰는 법 K-그라피는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흘러가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단정한 진술이다. 소예 김나은 작가의 이 작품은 조언이나 교훈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작품을 펼쳐 보인다. 검은 먹은 한 번에 멈추지 않는다. 굵고 무거운 획은 잠시 머물다 흐르고, 번짐은 의도하지 않은 흔적으로 남아 또 다른 시간의 결을 만든다. 화면 위에 점처럼 흩어진 먹의 얼룩은 멈춤이 아니라 속도를 늦춘 흐름이다. 인생이 늘 직선으로만 나아가지 않듯, 이 작품의 획 또한 곧고 단정하지 않다. 비틀리고 흔들리며, 때로는 낮게 가라앉는다. 상단의 형상은 인간의 자세를 연상시킨다. 숙이거나, 짚거나, 건너는 몸짓. 그것은 도착의 순간이 아니라 건너가는 과정의 한 장면이다. 작가는 그 장면을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화면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곡선의 획을 통해 말한다. 삶은 한 지점에서 완성되지 않으며, 의미는 도착이 아니라 흘러가는 태도에서 생겨난다고... K-그라피의 언어로 보자면, 이 작품에서 글씨는 문장을 전달하는 기능을 이미 넘어섰다. 획은 말이 되기 이전의 호흡이고, 먹은 감정이 아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 글씨 앞에 서면, 우리는 먼저 ‘읽지’ 않는다. 대신 느낀다. 글자는 의미로 다가오기 전에, 기류氣流처럼 몸에 닿는다. 김태곤 작가의 ‘바람의 자유’는 문장을 쓰지 않는다. 그는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먹은 획이 아니라, 숨의 방향으로 번지고 색은 칠해진 것이 아니라 스며든다. 붉은 바탕은 고요하지 않다. 마치 오래된 시간 속에 쌓인 기억처럼, 번짐과 얼룩은 질서 없이 겹쳐 있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푸른 획, 그 획은 결코 단정하지 않다. 흔들리고, 갈라지고, 멈칫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안정함이 이 작품을 자유롭게 만든다. “꽃잎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바람 속에 먼 바다도 파도소리가 들린다.” - 지안스님 詩 중에서 시의 문장은 작품 아래에 조용히 놓여 있지만, 실은 이미 화면 전체에 흩어져 있다. 글씨는 꽃잎이 되고, 꽃잎은 나비가 되며, 나비는 바람을 따라 사라진다. 이 작품에서 ‘바람’은 자연이 아니다. 집착을 내려놓은 상태,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 마음, 머무르지 않으려는 의지다. 그래서 이 글씨는 말한다. 자유란 더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붙잡지 않는 것이라고. 작가 노트 | 김태곤 명인 나는 글자를 쓰기보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 작품은 말하지 않음의 윤리를 묻는다. 윤미경 작가의 K-그라피는 ‘클레리키건’의 문장으로, “아이들은 침묵을 행해야 할 순간에 말해버려서 소중한 것을 잃는다”를 훈계가 아닌 형상으로 바꾼다. 작품 중앙을 가르는 굵고 긴 획은 칼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계선에 가깝다. 말과 침묵, 드러냄과 지킴 사이에 놓인 선. 그 아래 놓인 글자들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일정한 거리와 호흡을 유지한다. 이는 ‘말함’이 아니라 멈춤을 연습하게 하는 구조다. 윤미경 작가의 붓은 과감하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획의 시작과 끝은 분명하되, 여백은 넉넉하다. 이 여백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이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보호막이라는 메시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말은 쉽게 흘러나오지만, 침묵은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붓의 무게로 증명한다. K-그라피의 미학은 이 지점에서 성숙해진다. 이 작품은 말의 미학이 아니라 침묵의 태도를 기록한다. 보여주기보다 지키는 쪽을 택하는 용기와 윤미경 작가의 K-그라피는 그 용기를 검은 먹으로 남긴다. 작가 노트 | 윤미경 명인 이 문장을 읽고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에게 더 필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예임 작가의 K-그라피 작품은 크고 강한 언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하루를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온기를 꺼내 놓는다. “햇살 한 겹, 바람 한 줌 / 조용히 품어 안으면 / 오늘의 나도 어제보다 더 따뜻해진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생활의 감각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글씨는 선언하지 않고, 조용히 덮어준다. 작품 중앙을 채운 힘 있는 붓글씨는 거칠지만 과하지 않다. 획의 속도는 빠르되, 멈춤이 분명하다. 이는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리듬이다. 글씨 주변의 여백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머무를 자리이며, 그 여백 덕분에 문장은 독자의 일상으로 스며든다. 하단에 그려진 면화는 이 작품의 시각적 은유다. 면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따뜻한 재료다. 몸에 닿아야 비로소 가치가 완성되는 존재. 이는 작품의 문장과 정확히 겹친다. 따뜻함은 멀리 있지 않고, 조용히 안을 때 비로소 느껴진다는 사실. 이예임 작가의 K-그라피는 글과 그림을 통해 그 단순한 진실을 증명한다. K-그라피의 미학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이 작품은 보여주기 위한 글씨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글씨다.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면,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가을의 편지는 서두르지 않는다. 김정애 작가의 K-그라피 작품 ‘남정림의 가을편지’는 ‘배달 중인 마음’이라는 시적 발상을 시각적 서사로 풀어낸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이미 도착한 감정이 아니라, 향기를 남기며 다가오는 과정이다. 작품 상단을 장악한 굵은 글씨 ‘그대’는 부름이자 중심이다. 호명은 언제나 관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시구는 세로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며, 마음이 이동하는 시간을 만든다. “내 마음이 배달 중임을 알아주세요”라는 문장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기다림에 대한 예의다. 국화는 이 작품의 핵심 상징이다. 바구니에 담긴 국화는 화려하게 피지 않는다. 대신 깊고 오래 남는 향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이는 요란한 언어 대신 묵묵히 지속되는 사랑의 태도와 닮아 있다. 먹의 농담과 국화의 담담한 색채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여백 속에서 감정을 증폭시킨다. K-그라피의 미학은 여기서 명확해진다. 글은 읽히는 대상이 아니라 도착하는 존재가 된다. 김정애의 붓은 감정을 소유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감정이 상대에게 닿을 때까지의 거리와 속도를 정직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그래서 고백이 아니라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별은 밤에 태어나지만, 새벽별은 끝을 알고 있는 빛이다. 김경 작가의 K-그라피 작품 ‘정승호의 새벽별’ 은 이 미묘한 시간의 감각을 화면 전체에 풀어낸다. 깊은 남색과 푸른 층위가 원을 이루며 번져가는 배경은 우주이자 마음의 심연이다. 그 위에 놓인 굵은 붓의 ‘새벽별’은 반짝임이 아니라 의지에 가깝다. 정승호의 시는 묻는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김경은 이 질문을 장식적 별빛이 아닌, 무게 있는 획으로 답한다. 글자는 흘러가지만 무너지지 않고, 번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새벽이 밤을 배반하지 않듯, 희망 또한 고통을 지우지 않는다는 태도다. 작품 곳곳에 흩뿌려진 금빛 점들은 별이자 시간의 파편이다. 그러나 중심은 언제나 하나, 크게 쓰인 제목부에 있다. 중심을 향해 모든 문장이 수렴하고, 다시 바깥으로 호흡한다. K-그라피의 미학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시의 정서가 붓의 운동으로 전환되는 순간, 읽는 행위는 바라보는 행위가 되고, 바라봄은 스스로를 견디는 시간이 된다. 이 작품은 위로를 서두르지 않는다. 새벽별은 밤을 단숨에 밝히지 않는다. 다만 “곧 아침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가장 조용히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