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담화미디어그룹이 지난 23일, 지식재산처에 ‘K-민화’와 ‘K-그라피(K-Graphy)’에 대한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이번 출원은 단순한 상표 보호를 넘어, 한국 미술과 붓 문화의 정체성을 ‘이름’으로 확정하는 첫 제도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K-민화’와 ‘K-그라피’는 이미 담화미디어그룹이 운영해 온 신문·미디어 제호이자 문화 담론의 언어다. 그러나 이번 출원은 언론 명칭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 그 핵심은 분명하다. “이것은 한국의 것이다.” K-민화는 왜 ‘K’여야 했는가 민화는 오랫동안 ‘동양 민속화’, ‘아시아 포크아트’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소개돼 왔다. 하지만 담화 이사장은 일찍부터 이 질문을 던져왔다. “왜 한국에서 태어난 민화가, 세계에 나가면 한국의 이름을 잃는가.” 실제로 담화는 2024년 이후 K-민화를 ‘언론 용어’로 먼저 정착시켰고, 동시에 25개국에 K-민화 작품을 기증하며, 민화의 국적이 한국임을 실천으로 증명해왔다. K-민화는 장르명이 아니다. ‘K’는 국가 코드이며, 문화의 출처 표시다. 중국 민화가 아닌 K-민화 일본 민속화가 아닌 K-민화 동양 장식화가 아닌 K-민화 이번 특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박노해의 詩 ‘청매화’는 기다림과 인내를 말하지만, 그 방식은 소리보다 먼저 도착하는 향기다. 눈길을 걸어온 청매화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시린 바람 곁에서 피어나, “내가 왔다”고 말하지 않고도 이미 도착해 있음을 알린다. 은새 인복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정서를 여백과 절제된 선으로 옮긴다. 화면 한쪽에서 비스듬히 뻗은 매화 가지는 혹독한 겨울을 견뎌온 시간의 궤적처럼 보이고, 그 끝에 맺힌 작은 꽃들은 침묵 속에서 완성된 존재의 증거다. 굵고 담담한 획은 바람을 견딘 몸의 기억을 닮았고, 여백은 눈길 위에 남은 숨결처럼 고요하다. 이 작품에서 ‘오는 것’은 발걸음이 아니라 향기다. 먼저 마음에 닿고, 나중에 형상을 남긴다. 그래서 이 K-그라피는 누군가를 부르는 작품이 아니라, 알아보는 작품이다. 향기가 날아오면, 우리는 이미 서로를 알아본다. 작가노트 | 백인복 명인 말하지 않아도, 나는 여기에 청매화는 가장 추운 계절에 피어도 자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향기로 먼저 도착합니다. 이 작업에서 저는 보여주기보다 남겨두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보는 순간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린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해인의 詩 ‘바닷가에서’는 바다를 풍경으로 삼은 시가 아니다. 이 시에서 바다는 신의 음성과 인간의 울음이 동시에 머무는 자리, 그리고 내려놓음과 끌어안음이 교차하는 영적 공간이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자연의 소음이 아니라, 통곡과 위로가 번갈아 울리는 존재의 언어다. 조미주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리듬을 수평과 깊이로 번역한다. 화면 하단에 번져가는 푸른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장을 받아내는 감정의 그릇이다. 먹으로 적힌 시어들은 파도처럼 반복되며 밀려왔다가, 어느 순간 숨을 고르듯 여백 속으로 물러난다. 이 여백은 말하지 않음의 공간이자, 기도가 멈추는 자리다. 특히 이 작품에서 글씨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파도가 모래 위에 말을 “엎질러놓듯”, 문장들은 화면 위에 흘러놓아진다. K-그라피의 획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결을 그대로 품고 있으며, 그 거침 속에서 오히려 시의 진실성이 살아난다. 밀물과 썰물처럼, 이 작품은 붙잡으라 말하는 순간과 놓아버리라 말하는 순간을 함께 품는다. 결국 조미주 작가의 K-그라피는 바다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바다 앞에 선 한 인간의 마음 상태를 그린다. 이 작품은 묻는다. 우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박노해의 詩 「숨비소리」는 버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들어가야 할 곳을 정확히 가리킨다. “휘, 숨소리 토하며 반드시 살아나와야 한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지침이다. 삶의 표면에서가 아니라, 인생의 심장부까지 최대한 깊이 들어가라는 요구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다시 숨을 찾아 나와야 한다는 명령이다. 백경애 작가의 K-그라피는 이 詩의 긴장을 몸의 곡선과 호흡의 흔적으로 번역한다. 작품 하단에서 상단으로 치솟는 형상은 물속으로 잠수하는 인체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시 수면을 향해 몸을 비틀어 올리는 생명의 궤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먹의 농담은 폐 깊숙이 밀려드는 물의 압력을 닮았으며, 번져가는 선들은 숨을 되찾기까지의 흔들림과 긴박한 리듬을 닮았다. 이 작품 속에서 잠수부는 단순히 가라앉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가장 깊은 곳으로 몸을 맡기며, 동시에 반드시 다시 떠오르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인간의 상징으로 서 있다. 글씨는 단정하지 않다. 호흡이 고른 순간이 아니라,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순간에 쓰였다. K-그라피는 여기서 미학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 된다. 설명을 지운 자리에는 호흡만 남고, 장식 대신 체온
K-그라피 이존영 기자 | 김소현의 詩 「꽃의 자리」는 삶의 태도를 묻지 않는다. 대신 삶이 이미 보여주고 있는 방식을 가만히 가리킨다. 꽃은 자신이 왜 피어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햇빛이 머무는 방향으로, 아주 조금씩 몸을 기울이며 자기 몫의 시간을 건너간다. 이 조용한 문장은, 우리가 너무 자주 잊고 사는 삶의 자세를 정확히 짚어낸다. 조진원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세계관을 ‘중심’과 ‘기울기’로 시각화한다. 화면 한가운데 놓인 둥근 꽃의 자리, 그 원은 무대가 아니라 머무름의 공간이다. 그 안에서 노란 꽃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더 앞서 피어나려 하지도, 더 크게 보이려 애쓰지도 않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빛을 받아, 각자의 속도로 시간을 통과할 뿐이다. 먹으로 쓴 글씨는 단정하지 않다. 오히려 숨을 고른 흔적처럼 보인다. 힘을 빼고, 속도를 늦춘 획들은 ‘설명하지 않음’의 미학을 따른다. 이 작품에서 K-그라피는 말한다. 의미는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 그래서 이 작품은 주장하지 않는다.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나의 장면을 놓아둘 뿐이다. 그 장면 앞에 선 우리는 깨닫는다. 꽃의 자리는 정해진
K-그라피 이길주 기자 | 이 작품의 제목은 단순한 도형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삶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이 숨어 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서로 닮지 않았고,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으며, 각자의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형상들. 그러나 연경미 작가는 말한다. 그 다름이 나란히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고... 작품 중앙을 가르는 거대한 먹의 덩어리는 규정되지 않은 삶의 질량처럼 보인다. 번짐과 튐, 날것의 흔적은 계산되지 않은 시간의 기록이다. 그 위에 놓인 글씨는 설명이 아니라 자각의 문장이다. “삶이던가...라는 여운의 마침표는, 정답 대신 질문을 남긴다. K-그라피의 언어로 볼 때 이 작품은 ‘쓰기’보다 놓기에 가깝다. 획은 다듬어지지 않았고, 균형은 의도적으로 깨져 있다. 그러나 그 불균형 속에서 화면은 오히려 안정된다. 세모가 날카로움을, 네모가 버팀을, 동그라미가 포용을 맡듯, 삶 또한 서로 다른 성질들이 맞닿아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연경미 작가의 K-그라피는 차이를 조정하지 않는다. 설득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대로 두고, 나란히 서게 한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아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완전해야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류시화의 이 문장은 위로를 넘어 존재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우리는 늘 더 나아져야만, 더 채워져야만 빛날 수 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시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달을 보라고. 늘 둥글지 않아도, 매 순간 제 몫의 빛을 내는 달을... 조희진 작가의 이 작품은 깊은 밤이다. 별처럼 흩뿌려진 여백과 푸른 어둠 위에 떠 있는 반달은 결핍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진행 중인 존재의 얼굴이다.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도 이미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달은 말없이 증명한다. 굵고 단호한 획으로 쓰인 ‘달’의 형상은 흔들림 없이 화면의 중심을 잡고, 그 주변의 잔잔한 번짐은 시간의 숨결을 남긴다. 이 작품에서 ‘너’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우리 모두다. 겉으로 보이는 너보다 더 큰 너,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미 안에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이야말로 이 시가 가리키는 빛이다. 조희진 작가는 K-그라피의 언어로 옮겨진 이 시는 읽히기보다 보이며, 이해되기보다 체감된다. 달은 설명되지 않고, 대신 바라보게 만든다. 그 바라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나는 빛나고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김용택의 詩는 늘 자연에서 시작해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다시 설레는 봄날에’, 또한 그렇다. 이 시에서 봄은 계절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이며, 설렘은 젊음이 아니라 다시 믿어보려는 용기다. 장세진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정서를 ‘길’로 번역한다. 작품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곡선의 길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수없이 포기했던 마음을 다시 건너는 내면의 동선이다. 논두렁처럼 굽이진 길, 아직 차가운 물빛을 품은 강, 그리고 끝내 피어나는 봄꽃이 모든 요소는 삶이 늘 곧게만 흐르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말한다. 먹으로 쓴 글씨는 서두르지 않는다. 획은 단정하지만 완결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시 설레는 봄날에”라는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초대다. 이미 설레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설레도 괜찮아진 마음의 상태를 조용히 내어준다. 그래서 이 작품의 봄은 소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한 번 더 삶을 믿어보기로 한 사람의 낮은 목소리에 가깝다. K-그라피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글과 그림의 역할을 나누지 않는다. 글씨는 풍경이 되고, 풍경은 시의 행간이 된다. 읽는 이는 문장을 따라가다 길
K-그라피 이존영 기자 | 김학주의 詩 「쇠별꽃」은 존재의 서열을 조용히 해체한다. 잡초와 꽃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그 답을 ‘이름’이라는 단어 하나로 돌려준다. 모르면 잡초였을 것들도, 이름을 가지면 꽃이 된다. 이 단순한 문장은 삶의 가장 아픈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김고현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메시지를 ‘부르는 행위’로 확장한다. 화면을 채우는 보랏빛 번짐은 이름 없는 시간의 층위이며, 그 위에 얹힌 굵은 획은 호명呼名의 순간이다. 글씨는 단정하지 않다. 번지고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문장은 또렷해진다. 존재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려서 선명해진다는 사실이. ‘피어라’라는 명령형은 강요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피어 있는 것을 인정하는 선언에 가깝다. 쇠별꽃은 크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이름을 얻는 순간, 그 꽃은 더 이상 밟히는 대상이 아니다. 김고현 작가의 작품에서 여백은 침묵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누군가 불러주기를, 그리고 그 부름이 결국 스스로에게도 닿기를 기다리는 자리다. K-그라피의 미학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글씨는 전달을 넘어 존엄을 회복하는 도구가 된다. 이 작품은 묻지 않는다. “너는 얼마나 대단한가
K-그라피 이존영 기자 | 윤동주의 시 「조개껍질」은 버려진 것들의 침묵을 오래 바라보는 시다. 파도가 지나간 뒤 남은 조개껍질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지만, 그 자리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황나현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시선을 바다 가장자리로 데려온다. 작품 하단에 흩어진 조개껍질들은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삶이 남기고 간 기록물이다. 붓으로 적힌 시의 문장은 단정하지 않다. 고르지 않은 획, 일부러 남긴 멈춤은 바닷가의 리듬과 닮아 있다. 파도는 늘 같은 방식으로 밀려오지 않듯, 삶 또한 같은 상처를 같은 말로 남기지 않는다. 황나현 작가는 그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는다. 대신 그대로 둔다. K-그라피의 미덕은 정리보다 수용에 있기 때문이다. 모래 위의 조개껍질은 한때 살이었고, 지금은 껍질이다. 그러나 껍질이 되었다고 해서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비어 있음 때문에, 우리는 더 오래 들여다본다. 이 작품에서 바다는 설명되지 않고, 조개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은 오히려 남겨진 여백이다. 여백 속에서 시는 읽히고, 글씨는 풍경이 된다. 이 작품은 묻는다. 살아 있음이 사라진 뒤에도, 무엇이 남는가. 그리고 조용히 답